가로세로

되돌려준 전별금

 서산서장의 임기를 마치고 이임식후의 일이다. 
 도내리로 가는 차안에서 정보계장이 전별금 봉투라며 내개 주었다. 주변 동료와 선후배, 지인등이 영전을 축하하며 십시일반 무려 800여개의 봉투를 전별금으로 모아 전해주었다. 그것은 그 당시만 해도 상례화 되었고 말썽난 적도 없었다. 
 지금까지 관례화 되어온 전별금의 성의를 어떻게 할까 고민한 후에 이임식에 오신 것도 고마운데 돈까지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되어 모두 되돌려 드리기로 했다. 돈을 되돌려 받은 분들이 그동안 술 한잔 대접 못해 서운해서 봉투에 넣었는데 되돌려 주느냐며 몹시 서운해 하셨다. 
 오신 것도 고마운데 그것까지 받기에는 너무 송구했고 받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분들께 고맙고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압력속에 인천항만 하역장 수사

 인천항은 주요한 항구이다.
 그러나 하역장의 비산 먼지, 소음등이 항상 주민들을 괴롭혔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계속 민원분쟁의 대상이 되어왔던 것이었으나 주민들이 거대 업체와 다투는 것이 쉽지 않고, 행정기관의 관리 감독이 소홀해 불만이 내재된 채로 계속 되어왔다.
 저간의 사정이 있으나 서장 부임초기에 바로잡지 못하면 안되겠다 판단하여 대표회장에게 먼지제거와 덮개사용, 작업시간에 살수, 야적높이 준수등을 요청했다. 업체에서 미온적으로 응하자, 나는 위법사실을 면밀히 조사하여 사법처리 할 것을 지시했다. 
 여기저기서 압력이 들어왔으나 소신대로 사법처리 하였다. 결국 이것이 사회문제가 되고 결국 그 업체는 북항으로 이전했고 주위의 하역장이 보다 깨끗하고 쾌적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햇볕 본 제주 4.3사건

 1991년 초가을쯤으로 기억된다.
 정보심의관으로 부터 제주 4.3사건에 대해 정부에서 어떠한 조치를 내려야 할지 연구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당시 4.3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4.3에 대한 모든 문헌들을 수집하고 심지어는 소설까지도 읽어본 후 나름대로 결론이 나왔다.
 나는 정부가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에게 과감하고 적극적인 명예회복과 보상방안을 제시하였다.
 역사의 평가를 바르게 자리매김 될 수 있도록 조치해 줄 것과 그 후손들이 떳떳하게 얘기하고 활동 할 수 있도록 위령탑을 설치하고, 지금까지 축소했던 기념일을 정부의 최고책임자가 참석하여 사과, 반성할 것을 제시했다.
 4.3이 역사 속에서 재조명되고 거기에 합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획기적 조치를 한 것이다.